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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엉덩이로 왜관까지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갈 곳 많은 우리나라, 자전거로 ‘씽~씽~’ 2부


편집자 주) 2008년 미디어큐빗 고재웅 대표의 자전거 여행기 3부작을 발굴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총 3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침으로 올갱이 해장국을 사주며 건투를 빌어준 동기의 격려를 받으며 영동을 향해 나아갔다. 전날과 달리 화창한 가을 날씨의 따사로운 햇살이 도로 위에 펼쳐져 있었다. 당초 계획이라면 이날 영동이 있었어야 하지만 돌발펑크로 인해 옥천에 머무는 바람에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적어도 10월 3일에는 부산에서 제주도 행 여객선에 올라야 일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헌정이와 4번 국도를 타고 부지런히 나아갔다.

영동에 도착할 즈음 점심을 먹기위해 시골도로가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에 찾아갔다. 할머니 한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 식사할 수 있나요?”

“라면은 끓여줄 수 있수.”

“그럼 밥도 한공기만 주세요.”


김치맛도 좋고 젓가락에 착착 감기는 라면을 후룩후룩 맛있게 먹으며 넉살 좋은 헌정이가 할머니께 이것저것 물어봤다. 나이는 어떻게 되시는지, 장사는 잘되는지, 자식들은 잘 대해주는지 등등. 한적한 곳에 있어 적적했는지 할머니는 우리 옆에 자리를 잡고 대답해주셨다. 동네에 공병대가 있을때는 군인들 때문에 장사가 그럭저럭 됐는데 지금은 썩 좋지 않다고. 이웃에서 할머니 한분이 마실을 나왔다. 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것을 부탁했다. 이 나이에 무슨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머리를 매만지고 곁에 앉으셨다.

점심을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도로를 질주하다 지역의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표지판 아래서 사진을 찍었다. 대전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해 보니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진다. 영동에 다다를 때쯤 엉덩이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헌정이도 마찬가지였다.


영동에 도착해서 다시 자전거 수리점에 들렀다. 왜 남자가 자전거를 오래타면 전립선비대증에 걸린다고 하지 않던가. 이걸 방지해줄 안장이 있을지... 주인 아저씨의 대답은 “물론” 이었다. 그분의 추천을 받아 안장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으나 결국은 다시 아파왔다. 괄약근에 힘을 줄때마다 엉덩이 부근이 떨어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쩌랴, 달리는 수밖에...

김천을 지나자 날이 어두워졌다. 첫 야간 주행이라 조심스러웠다. 이날의 목적지는 왜관으로 잡았다.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했던 대학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 고향이 왜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는 것이다. 헌정이와 의논을 했고 그냥 찜질방에서 몸도 풀고 편하게 쉬기로 했다. 동기는 오히려 우리에게 미안해하면서 왜관의 찜질방 위치도 알아봐줬다. 전날과 이날, 동기의 고마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김천을 지나 왜관으로 접어드는 길은 다행히 내리막길이라 몸은 지쳐있었지만 쉽게 찜질방까지 도착했다. 헌정이와 그날 달린 거리와 시간을 따져봤다. 약 8시간 동안 110km 정도를 달렸다. 이 페이스라면 이틀 후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이윽고 사우나 온탕에 몸을 담그고 피곤한 첫날의 여독을 풀었다.

지루한 도로 위 황당 휴게소

이틑날 일어나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니 TV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도보로 군사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도 넘은 시각. 적어도 7시에는 왜관을 떠나겠다는 계획은 달콤한 꿈과 함께 날아갔다. 이날부터 기상시간은 30분, 1시간씩 점점 늦어져 마지막날에는 12시가 다 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기왕 늦었으니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더 보고 10시경 찜질방을 나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주문을 해놓고 헌정이가 잠시 시장엘 다녀왔다. 손에 스펀지로 만들어진 방석을 사왔다. 안장 위에 얹어놓으니 엉덩이의 표면적을 넓혀줘 훨씬 편했다. 덕분에 고통없이 대구까지 단숨에 달려갈 수 있었다.

역시 광역시는 넓었다. 경산으로 가야하는데 대구 시내를 거쳐 가야만 했다. 잦은 신호와 혼잡한 도로는 갈 길을 더디게 만들었다. 차라리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으면 빨리 대구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들었다. 기간 내 완주가 목적이지 꼭 자전거만 이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약 3시간 정도를 헤매다 대구를 빠져나와 경산을 지나니 평길이 이어졌다. 외곽도로는 갓길이 있어 자전거를 타기에 안전하고 좋지만 똑같은 풍경의 지루함과 마땅히 쉴 곳이 없는 단점이 있다. 평길 주행에 지쳐갈 무렵 멀리서 ‘휴게소’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타났다. 헌정이와 기뻐하며 그곳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휴게소 건물엔 ‘상가임대’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오라고 오라고 유혹할 때는 언제고 상가임대라니... 담배 맛이 썼다. 허공 속에 흩어지는 담배연기의 허무함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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