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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내가 내게 준 특별 휴가…“페달을 힘차게 밟아라!!”

최종 수정일: 1월 7일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갈 곳 많은 우리나라, 자전거로 ‘씽~씽~’ 1부


편집자 주) 2008년 미디어큐빗 고재웅 대표의 자전거 여행기 3부작을 발굴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총 3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생은 그런가 보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별거 아니었던 듯 생각되는, 어찌 됐던 해볼 만하다는 것.


지난 10월 초 며칠간 전국을 자전거로 달렸다. 10박 11일간 대전에서 부산으로, 제주도를 돌아 목포에서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약 3개월간의 백수 생활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전국 일주를 마치고 나니 끊임없이 펼쳐진 평길, 힘들었고 수많았던 오르막길, 신나는 내리막길, 야간 주행, 만난 사람, 초가을 풍경, 속 썩이는 자전거 모두 좋은 추억이 됐다. 완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전거 전국 일주에 대해 바람을 잡은 것은 대학 동기인 정헌정이다. 몇 달 전 서울 출장에서 만난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야, 휴가 좀 내라. 전국 일주하자.”


30살 넘은 직장인이 일주일 이상 자기 시간을 내기란 여간해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꽉 짜인 조직 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 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더욱이 당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전국 일주를 위해 꼭 사표를 던진 것은 아니지만 친구의 제안은 새로운 인생 계획에 대한 설렘과 열정을 샘솟게 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헌정이와 9월 30일을 D-Day로 잡고 10월 10일에 돌아온다는 계획을 잡았다.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꼭 2년이다. 자전거를 구입하고 두어 달 정도 타고 방치해둔 기간이다. 바람이 몽땅 빠져 ‘푸직 품직’ 소리를 내는 자전거를 끌고 수리점을 찾았다. 백수 특유의 게으름으로 그것도 출발 바로 전날 간단히 브레이크를 체크하고 타이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었다. 일단 준비는 끝난 듯했다. 옷가지 등 물품들은 대충 출발하면서 챙기면 되니까. 어차피 자전거의 컨디션이 중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중에야 미리 살펴보고 몰아보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힘들다는 펑크가 총 4번이나 있었고 정비는 5번이나 받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를 절실히 느끼게 된 순간이다. 당분간이야 자전거를 쳐다도 보기 싫지만 역마살이 언제 다시 발동할지 모르니 종종 타 둬야겠다는 다짐도 함께했다.



부산을 향해 달려라

“미친 거 아녀?”, “정말 부러워요.”

주위 사람들에게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두 종류의 반응이 나왔다. ‘미쳤어’는 주로 선배, ‘부러워’는 후배. 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장기출타가 몇 번이나 더 있을까. 헌정이 말마따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첫걸음을 떼었다. 혹시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서로 반대가 아니었을까?


9월 30일, 갑천역에서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헌정이 어머님의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고 전날 지방 공연으로 인해 새벽에 올라오는 바람에 몸도 피곤했다. 출발을 다음날로 미뤘으면 했지만 전국 일주 이후의 스케줄을 위해 강행군하기로 했다.

3시쯤 헌정이네 식당이 있는 원동에 도착하니 어느새 비도 그쳤다. 어머님이 차려주신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부산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직 자전거에 짐칸을 설치하지 않아 근처 수리점에 들렀다. 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멀리 가느냐고 물어보시곤 짐칸을 달고 나서 브레이크를 다시 손봐주고 타이어 바람도 채워줬다. 어깨의 배낭을 짐칸에 옮겨 싣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첫날은 영동까지 가기로 했다.



옥천 돌발 펑크 사고

판암동을 벗어나니 자전거 전용도로도 끝이 났다. 갓길로 열심히 달렸다. 두어 시간 달리니 엉덩이가 아프고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충청남도에서 충청북도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자전거 기어를 잔뜩 풀어놓고 올라가 경계선에 도착했다. 이제 옥천까지 내리막길. 잠시 쉬면서 ‘아름다운 충북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쓰인 표지판 아래서 사진을 한 컷씩 찍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도로의 가시는 왜 타이어를 찍었을까. 내리막길에서 펑크가 난 것이다. 마침 마을이 있어 사람들에게 자전거포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래로 내려가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날이 어두워져 라이트를 가지고 있는 헌정이가 먼저 찾아보겠다고 떠났고 내 자전거는 출발 전날 수리점으로 갈 때처럼 ‘뿌직 품직’ 소리를 내며 힘없이 끌려갔다.

나무와 풀, 집들로 가려져 더욱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한참 걸어가고 있을 때 헌정이로부터 농기계 수리하는 곳에서 펑크를 때울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약 10분 정도를 더 걸어가 이백정이라는 마을의 수리점에 도착했다. 주인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타이어와 튜브를 분리하고 터진 곳을 찾아냈다. 펑크 패치를 붙여야 했지만 불행히도 전용 본드가 없다는 것이다. 대충 때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람이 샜다. 첫날의 여정도 여기서 김샜다.



옥천에 사는 대학 동기에게 SOS를 날렸고, 헌정이는 먼저 옥천으로 출발했다. 몇 분 후 구세주와 같은 동기가 차를 몰고 찾아왔다. 뒷좌석에 자전거를 억지로 구겨 넣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역시 동기가 좋다.


다음날 옥천에 있는 수리점에서 펑크를 때우고 휴대용 펌프와 패치를 샀다. 도저히 자전거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스스로의 운을 믿지 못했다. 다행히 이때 구입한 물품들은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