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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불꾸불 오르막은 싫어…청도 남성현재·밀양 새나루 고개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갈 곳 많은 우리나라, 자전거로 ‘씽~씽~’ 3부


편집자 주) 2008년 미디어큐빗 고재웅 대표의 자전거 여행기 3부작을 발굴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총 3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휴게소가 얼른 자리를 잡기를 바라며 길을 나섰다. 날이 살짝 흐려지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달리던 중 오르막길 하나를 만났다. 기어를 풀고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하지만 어째 모퉁이를 돌 때마다 위로 곧게 뻗은 자태를 뽐내는 도로를 보니 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문득 군대서 행군하던 생각이 났다. 운도 없이 훈련지로 자대 배치를 받고 온 신병이 있었다. 첫날부터 행군을 해야 했다. 세밑 고개라는 악명 높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신병은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 한 고참의 손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3분의 2쯤 왔을 때 고참은 저 모퉁이만 돌면 끝이라고 신병을 위로했는데, 그곳을 돌자 또 오르막이 나왔다. 신병은 울부짖었다. “여기가 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피식 웃음이 났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 버거워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터널 공사가 한창인 곳을 지나치며 헌정이와 “진작 뚫었으면 편하게 갔을 텐데.”하는 대화도 나눴다. 또 그곳은 음식 잔반 냄새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30여 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오르막 차로 끝’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정상 휴게소가 나타났다. 정상은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와 경산의 경계였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오르막길 정상은 도시의 경계가 많다! 휴게소에는 마주 보고 있는 황소 동상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전망대에서는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아래가 더욱 까마득해 보였다. 휴게소에 물어보니 이곳이 ‘남성 현재’라고 했다. ‘잊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성 현재를 신나게 내려와 밀양으로 향할 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흠뻑 젖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더 쏟아지기 전에 정비를 해야 했다. 조그만 마을의 전원 식당에 자전거를 세웠다. 저녁도 먹고 배낭을 비닐에 넣기 위해서다. 추어탕을 시켜놓고 라이트, 안전 등, 우비 등 필요한 것들만 꺼내놓고 카메라와 휴대용 펌프 등은 배낭 안에 넣었다. 배낭의 우비는 쓰레기 규격 봉투. 일반 비닐보다 튼튼해 잘 터지지 않아 좋다.


추어탕이 나왔다. 대전에서 먹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진국이라기보다는 약간 멀국이었고 제피 가루라는 향신료를 뿌려먹는다. 해병대 출신인 헌정이는 포항에서 많이 먹었었다며 오랜만이라고 좋아했다. 따뜻한 국물에 몸이 녹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비에 대비한 그대로 출발했다. 21시경 밀양에 도착했다. 이상할 정도로 한산했다. 아무리 평일이라도 이 시간 때면 시내에 사람들이 넘쳐날 텐데 길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야간이라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깔끔한 도시였다. 헌정이가 지나가는 경찰차를 붙잡고 김해 방면으로 가는 경로를 알아왔다. 밀양역을 지나쳐야 했다. 역을 지나자 옥수수빵을 파는 용달차가 한 아파트 정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빵을 사다가 헌정이와 나눠먹었다. 달착지근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찾아가 사 먹고 싶을 만큼.


저 앞에서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가 보였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설마 남성 현재만큼 하랴싶어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경사도 좀 더 급했다. 아예 내려서 걸었다. 차도 없었다. 한 시간가량 고개를 넘는 동안 총 5~6대 정도만 봤을 뿐이다. 차라도 있어야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산 높이를 짐작할 텐데, 그마저도 없으니 야속할 뿐이었다.


정상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헌정이와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귀신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샥~ 쌱~”, “쓰읍~ 카울~” 하며 이상한 산짐승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무서워져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꾸불꾸불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힘들게 다시 한참을 올라가 고갯마루에 다다랐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나라에 산이 많다지만 왜 산길을 냈을까. 터널을 뚫어놓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헌정이와 이런저런 불평으로 투덜댔다. 다시 잠시 쉬었다 내리막길을 달렸다. 차가 없으니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힘들게 올라갈 때는 차 불빛이 그리웠는데, 내리막에서는 그게 좋다니. 간사한 인간의 마음.

삼랑진읍에 도착했다. 여기서 김해까지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헌정이와 의논했다. 가면 다음날 부산행이 쉬울 테지만 방금과 같은 산을 또 만난다면 대책이 없다. 머물기로 했다. 114에 근처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알아봤지만 모두 문을 닫았단다. 여관을 알아보고 찾아갔다. 주인장이 숙박비를 할인해 줘 싸게 묵었다. 그분께 방금 넘은 고개 이름을 물어보니 모른다고 했다. 다만 “왜 그곳을 넘어왔느냐. 돌아서 오는 길이 있는데 요새는 그 고개는 잘 다니지 않는다."라고 했다. 허무함이 밀려왔다. 지도 좀 자세히 보고 올 것을. 나중에 대학 동기에게 그 고개가 무엇인지 검색을 부탁했더니 ‘새 나루 고개’라는 이름을 가졌단다.